실제 사례 여섯 편
진단부터 12주 뒤 결과까지, 한 사이클을 통째로 따라간다.
여기부터가 이 파트의 본체다. 여섯 사례는 초등 2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, 수리력의 서로 다른 길목에서 멈춘 학생들을 다룬다. 사례마다 학생 프로필 → 진단 결과 → 12주 목표 → 회기 설계 → 수업 장면 → 결과와 교사의 메모의 같은 틀을 쓴다. 자기 학생과 가장 비슷한 사례부터 펼쳐 읽어도 좋다.

사례 1 · 초등 2학년 지호 — 수를 '세어야만' 아는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초2 남학생. 경계선지능 의심(종합심리검사 대기 중). 밝고 성실하며 결석이 없다. |
| 의뢰 사유 | 담임 의뢰. 2학년 1학기 '덧셈과 뺄셈' 단원 형성평가에서 20문항 중 4문항 정답. |
| 진단 결과 | ① 1~50 수 세기는 가능하나 40대에서 자주 멈춘다. ② 7과 5 중 어느 것이 큰지 묻자 손가락을 다 편 뒤 센다. ③ 8+5를 1부터 다시 세어(count-all) 계산한다. ④ 10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전략이 전혀 없다. |
| 한 문장 진단 | "지호는 수를 '양'이 아니라 '세는 순서'로만 알고 있어, 모든 연산을 처음부터 세어 해결한다." |
| 12주 목표 | ① 0~20 범위에서 텐 프레임을 보고 3초 안에 수량 말하기 ② 10 만들기 전략으로 한 자리 덧셈 풀기 ③ 1분 덧셈 검사 8문항 → 25문항 |

회기 설계 (주 3회 × 40분 × 12주)
| 시간 | 활동 | 왜 이 활동인가 |
|---|---|---|
| 5분 | 수 세기 워밍업 — 2씩, 5씩, 10씩 뛰어 세기. 교사와 번갈아 말한다. | 수 계열을 자동화해야 뛰어 세기 전략이 가능해진다. |
| 10분 | 텐 프레임 순간 노출 — 3초 보여 주고 가리기. "몇 개였어? 어떻게 알았어?" | 하나씩 세지 않고 덩어리로 보는 힘(직산)을 기른다. '어떻게 알았어'가 핵심 질문이다. |
| 10분 | 10 만들기 — 7에 몇을 더하면 10? 짝꿍 카드 놀이. | 10의 보수를 자동화해야 8+5를 8+2+3으로 쪼갤 수 있다. |
| 10분 | 빈 수직선에 뛰어 세기로 덧셈 기록하기. | 머릿속 과정을 종이에 내려놓아 작업기억 부담을 줄인다. |
| 5분 | 1분 검사 + 그래프에 점 찍기. | 학생이 직접 찍게 한다. 자기 성장을 눈으로 본다. |
12주 뒤 지호의 1분 덧셈 검사 점수는 8문항에서 26문항으로 올랐고, 무엇보다 손가락 없이 푸는 문항이 전체의 3분의 2를 넘었다. 남은 과제는 20 이상 범위로의 확장이다.
사례 2 · 초등 3학년 서연 — 받아내림에서 매번 무너지는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초3 여학생. 조용하고 지시를 잘 따르지만 수학 시간에는 필통 정리를 오래 한다. |
| 진단 결과 | 받아내림이 없는 두 자리 뺄셈 10문항은 모두 정답. 받아내림이 있는 10문항은 9문항 오답이며, 오류 유형이 일관되게 '각 자리에서 큰 수 − 작은 수'였다(52 − 27 = 35). |
| 한 문장 진단 | "서연은 뺄셈을 '자리별로 두 수의 차를 구하는 일'로 이해하고 있어, 십의 자리를 풀어 쓰는 개념이 없다." |
| 12주 목표 | 받아내림이 있는 두 자리 뺄셈 정확도 10% → 90%, 절차를 소리 내어 설명하기 |
서연의 오답은 실수가 아니라 규칙적인 오개념이다. 이런 경우 문제를 더 많이 풀리는 것은 오개념을 강화할 뿐이다. 필요한 것은 '십의 자리를 푼다'는 개념을 눈앞에서 다시 세우는 일이며, CRA 계열이 정확히 이 일을 한다.
- C화폐 모형으로 (3주)
1000원짜리 없이 100원·10원·1원 동전만 쓴다. 52원에서 27원을 내려면? 1원이 2개뿐이니 10원 하나를 1원 10개로 바꿔 온다. 이 '바꿔 오기'를 학생 손으로 최소 30회 이상 반복한다.
- R그림과 수직선으로 (4주)
동전을 그림으로 대체한다. 십 묶음에 사선을 긋고 낱개 10개를 그려 넣는다. 이어서 빈 수직선에서 52 → 50 → 30 → 25로 뛰어 내려가는 방법을 함께 익힌다. 두 방법이 같은 답을 내는지 확인한다.
- A세로셈 기호로 (5주)
이제 종이에 세로셈을 쓴다. 단, 십의 자리를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을 반드시 소리 내어 말하게 한다. "2에서 7을 못 빼니까, 옆의 5를 4로 바꾸고 2를 12로 만든다."

사례 3 · 초등 4학년 민준 — 아는데 너무 느린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초4 남학생. 개념 이해는 또래 수준이나 모든 과제가 남보다 두세 배 오래 걸린다. |
| 진단 결과 | 곱셈의 의미는 설명할 수 있고 그림으로도 나타낸다. 그러나 7×8을 묻자 7을 여덟 번 더해 답을 구한다(23초 소요). 1분 곱셈 검사 결과 6문항 정답. |
| 한 문장 진단 | "민준은 곱셈 개념은 알지만 곱셈 구구가 자동화되지 않아, 모든 문제에서 작업기억을 계산에 다 써 버린다." |
| 12주 목표 | 1분 곱셈 검사 6문항 → 30문항, 나눗셈 학습 준비 |
민준 같은 학생에게 "구구단을 외워 와라"는 지시는 거의 효과가 없다. 무작정 암송은 의미 연결 없이 잊히고, 실패 경험만 쌓인다. 자동화에는 세 가지 설계가 필요하다.
- 덩어리로 쪼개기 — 81개를 한꺼번에 다루지 않는다. ×2, ×5, ×10처럼 쉬운 것을 먼저 완전히 자동화한 뒤(전체의 절반이 여기서 해결된다), ×3, ×4, ×6~×9 순으로 넓힌다.
- 간격을 두고 되찾기 — 오늘 배운 것을 오늘만 반복하지 않는다. 오늘·이틀 뒤·일주일 뒤·3주 뒤에 다시 꺼내게 한다. 매 회기 앞부분 3분을 '지난주 것 되찾기'에 고정 배정한다.
- 섞어서 연습하기 — ×6만 20문항 푸는 것보다, 이미 익힌 ×2·×5와 새 ×6을 섞어 20문항을 푸는 편이 장기 기억에 유리하다. 당장은 정답률이 조금 떨어져 보이지만 몇 주 뒤 차이가 뒤집힌다.
12주 뒤 민준은 1분에 31문항을 풀었다. 더 중요한 변화는 나눗셈 수업에서 나타났다. 곱셈에 쓰던 인지 자원이 남게 되자, 처음으로 나눗셈의 '몫과 나머지'를 설명할 수 있었다.
사례 4 · 초등 5학년 하윤 — 계산은 되는데 문제를 못 푸는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초5 여학생. 사칙연산 정확도 90% 이상. 그러나 문장제만 나오면 '모르겠다'며 손을 놓는다. |
| 진단 결과 | 문장제 8문항 중 2문항 정답. 문제에 나온 두 수를 무조건 더하거나(=키워드 추측), 문제를 다 읽지 않고 식을 세운다. "무엇을 구하는 거야?"라고 물으면 답하지 못한다. |
| 한 문장 진단 | "하윤은 문장제를 '수를 찾아 계산하는 일'로 다루고 있어, 문제 상황의 구조를 표상하지 못한다." |
| 12주 목표 | 세 가지 도식(전체-부분, 비교, 변화)을 구분해 도식에 수를 배치하고 식 세우기 |

키워드 전략('모두'가 나오면 더하기)은 단기적으로는 정답률을 올리지만 결국 무너진다. 문제의 구조가 조금만 달라지면 키워드가 배신하기 때문이다. 대안은 도식 기반 교수다. 문제를 유형이 아니라 구조로 보게 한다.
사례 5 · 초등 6학년 태오 — 분수를 두 개의 자연수로 보는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초6 남학생. 자연수 연산은 유창하다. 분수 단원부터 성적이 급락했다. |
| 진단 결과 | 1/2 + 1/3 = 2/5로 답한다. 1/4과 1/8 중 어느 것이 큰지 묻자 "8이 더 크니까 1/8"이라고 답한다. 3/4을 수직선에 표시하지 못한다. |
| 한 문장 진단 | "태오는 분수를 하나의 양이 아니라 위아래에 놓인 두 개의 자연수로 보고 있다." |
| 12주 목표 | 분수를 수직선 위의 한 점으로 나타내기, 크기 비교와 어림, 동분모 덧셈의 의미 설명하기 |

분수 지도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연산 규칙부터 가르치는 것이다. 통분을 익히기 전에 3/4이 1보다 작고 1/2보다 크다는 감각이 먼저 서야 한다. 12주 중 앞의 8주를 크기 감각에만 썼고, 연산은 마지막 4주에 다뤘다.
- 같은 크기 다른 이름 찾기 — 분수막대를 겹쳐 1/2 = 2/4 = 4/8을 손으로 확인한다.
- 기준점 만들기 — 0, 1/2, 1을 기준으로 삼아 "5/8은 1/2보다 크다"를 즉답하게 한다.
- 수직선에 올리기 — 분수막대에서 수직선으로 옮긴다. 이 전환이 뒤에 소수·비율까지 이어진다.
- 틀린 답으로 되돌아보기 — "1/2 + 1/3 = 2/5라면, 답이 1/2보다 작아지는데 이상하지 않아?" 어림으로 자기 답을 검증하는 습관을 들인다.
사례 6 · 중학교 1학년 예린 — 교실 밖에서 수학이 필요한 아이
| 구분 | 내용 |
|---|---|
| 학생 | 중1 여학생. 경계선지능 진단(전체 IQ 76). 초등 4학년 수준의 연산 능력. |
| 진단 결과 | 두 자리 덧셈·뺄셈은 계산기 없이 가능. 곱셈은 ×2, ×5만 자동화. 시계는 정시와 30분만 읽는다. 3,000원으로 1,200원짜리 두 개를 살 수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다. |
| 한 문장 진단 | "예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중1 교육과정이 아니라, 혼자 생활하는 데 쓰는 수리력이다." |
| 12주 목표 | ① 시간표 읽고 등교 시각 정하기 ② 3,000원 예산 안에서 구매 결정하기 ③ 약도에서 거리 계산하기 |
중학교 단계에서 초등 저학년 수준의 학생을 만나면 두 가지 길이 갈린다. 학년 교육과정을 낮춰 계속 따라가게 할 것인가, 아니면 생활에 바로 쓰이는 수리력으로 목표를 옮길 것인가. 예린의 경우 학교와 보호자가 상의해 후자를 택했다. 이때도 연산 지도를 버리지 않는다. 다만 연산을 '교과서 문제'가 아니라 '실제 상황' 속에서 연습시킨다.

| 주차 | 상황 | 다루는 수리력 | 산출물 |
|---|---|---|---|
| 1~3주 | 우리 동네 약도 만들기 | 거리 덧셈, 단위(m), 방향 | 직접 걸으며 거리 재고 지도에 적기 |
| 4~6주 | 학교 시간표와 버스 시각표 | 시간 계산, 60진법, 어림 | "8시 20분 버스를 타면 지각인가?" 판단표 |
| 7~9주 | 3,000원 간식 사기 | 돈 계산, 예산 제약, 비교 | 예산 안에서 조합 3가지 만들기 |
| 10~12주 | 우리 반 간식 설문 그래프 | 자료 수집, 표와 막대그래프, 해석 | 설문 결과를 그래프로 발표하기 |
12주 뒤 예린은 버스 시각표를 보고 등교 시각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었고, 편의점에서 예산 안의 조합을 계산기 없이 판단했다. 곱셈 구구는 여전히 ×2, ×5, ×10에 머물렀다. 그러나 보호자 상담에서 나온 말이 이 12주의 성과를 요약한다. "이제 혼자 심부름을 보낼 수 있어요."